‘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이 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8일간의 열전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대회는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에서 열려 태극전사들의 승리 의지를 더욱 불러일으킵니다. 더욱이 올해는 광복 80주년입니다. 이번 동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독립운동사와 맞물린 하얼빈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를 되짚어보는 한편, 경기도가 마련한 광복 80주년 기념 사업을 소개합니다. |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에서의 역사적 사건은 광복을 염원했던 사람들 마음에 불을 지핀 일이었는데요.
올해로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하얼빈에서 찾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해봤습니다.
하얼빈역·안중근 의사기념관

하얼빈역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다. 역사 내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따로 마련돼있다. 사진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입구 모습은 리모델링 전의 모습. ⓒ 경기뉴스광장
하얼빈역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입니다. 역내에는 안중근 의사가 권총을 발사한 장소와 이토히로부미가 총탄을 맞은 장소를 네모와 세모표식으로 표시해 놓았는데요. 현재의 하얼빈 역사는 새롭게 건립되어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플랫폼은 옛날과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14년 1월 하얼빈역 내에는 안중근 의사기념관이 새롭게 건립됐습니다. 기념관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했던 장소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에 건립했다는 점이 눈여겨볼 점입니다. 이곳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출생과 가계, 국내와 만주에서의 의병활동, 이토히로부미의 처단 과정, 의거 후 재판과 순국 과정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자오린 공원(옛 하얼빈공원)
1900년 하얼빈 최초의 공원으로 조성된 자오린 공원은 원래 하얼빈 공원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이후 이곳에 항일 영웅이었던 이조린(李兆麟) 장군의 유해를 안장하고 장례식을 치렀으며, 1946년부터는 자오린공원으로 명칭을 변경돼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특히 자오린 공원은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계획했던 곳으로도 유명한데요. 특히 안중근 의사는 유서에서도 자신이 죽으면 하얼빈 공원(현 자오린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이외에도 이곳엔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유묵비도 자리해 있으며, 유묵비에는 못가의 푸른 풀이 돋아난다라는 ‘청초당’이란 글귀가 쓰여있습니다.
하얼빈 731부대 유적지

하얼빈에 남아있는 731부대 유적지는 1938년에 설립된 곳으로 2001년부터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장소로 개관하여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사진과 수술도구와 같은 물품 등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 경기뉴스광장
731부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일제의 부대로 한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 포로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인체실험과 생화학무기 개발 등 각종 비인도적인 행위를 시행한 단체이기도 합니다.
현재 하얼빈에 남아있는 731부대 유적지는 1938년에 설립된 곳으로 세계 2차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비인간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1년부터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장소로 개관하여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사진과 수술도구와 같은 물품 등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하얼빈과 관련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김동삼, 남자현 선생

김동삼 선생(좌)과 남자현 선생(우)은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다. ⓒ 독립기념관 출처
안중근 의사와 같이 대한독립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들이 있습니다.
먼저 김동삼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만주에서 신흥강습소를 세우고 민족유일당촉진회를 조직하여 위원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1918년에는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상해의 임시정부를 조직하는데 참여하고 청산리전투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 때 하얼빈에서 붙잡혀 본국으로 강제송환,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어 복역하던 중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1962년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기도 했습니다.
남자현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서로군정서로 활약하면서 만주에서 군사기관과 농어촌을 순회하며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여성 계몽운동과 전도까지 한 독립운동가입니다.
1928년 길림에서 김동삼·안창호 선생 등 47명이 중국 경찰에 검거되자 지성으로 간호하며 석방운동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후 1931년 김동삼 선생이 하얼빈에서 붙잡히자 그를 탈출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외에도 국제연맹 리튼조사단에게 혈서를 써 독립을 호소하고 주만일본대사를 암살하려고 시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6개월 간 혹형을 받았습니다. 이후 보석 석방됐지만 결국 하얼빈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김동삼 선생과 마찬가지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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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다시 하얼빈에서] ① “광복 80주년, 하얼빈에서 태극기 휘날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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