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태우 의사의 의거를 그린 당시 신문 삽화 ⓒ 경기문화재단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기차를 타고 가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자 돌을 던진 원태우 의사는 모르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안양에서 나고 자란 원태우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닷새 후 이토 히로부미가 수원에서 일정을 마친 뒤 경성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뜻을 함께하기로 한 동료들과 지금의 안양시 석수동 철길 주변으로 가서 큰 돌을 놓아 기차를 전복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의 희생을 걱정하여 계획을 바꾸어 짱돌로 이토 히로부미의 좌석을 직접 가격하고자 하였습니다.
원태우 의사의 돌은 이토 히로부미가 앉은 차창에 정확히 명중했고, 이토 히로부미는 그 유리 파편에 상해를 입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큰 상해를 입은 이 사건이 알려지며 이후 자주 독립운동이 널리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양시립만안도서관의 원태우 지사 의거비 앞 설명 ⓒ 강준모 기자
이후 원태우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온갖 고문과 구금 끝에 석방되었으나 평생 고문의 후유증을 안고 살아갔습니다. 원태우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은 비록 안중근 의사처럼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평범한 민중의 강인한 저항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인한 항일 정신을 표현한 듯한 안양시립만안도서관의 원태우 지사 의거비 ⓒ 강준모 기자
안양시립만안도서관에는 원태우 의사의 의거비를 볼 수 있습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원태우 의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독립운동가로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을사늑약 이후 기세등등하게 수원을 떠나 안양을 지나 경성으로 올라가고 있던 일제에게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저항 정신을 보여준 원태우 의사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안양시립만안도서관의 원태우 지사 의거비 뒷면에는 원태우 의사의 출생과 항일 의거 이야기가 자세히 새겨져 있다. ⓒ 강준모 기자
경기도는 지난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아
광복 80주년 기념 사업으로 추진하는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 중 21인을 공개했으며, 원태우 의사도 그중 한 명입니다. 안양시립만안도서관에서는 원태우 의사의 의거비를,
평촌 자유공원에서는 원태우 의사의 흉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게 된다면 원태우 의사의 애국심을 되새기며 오늘이 얼마나 값진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깊이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