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연영(1864~1907) 독립운동가와 그의 아들 구정서(1882~1907) 독립운동가 편입니다. 역적 놈들이 왜적을 끼고 안으로 임금을 협박해 일본 군대를 불러 궁중에 난을 일으키고 대궐을 넘어 국모를 살해했습니다. 구연영은 1895년 12월 명성황후 시해에 분개해 봉기를 들었습니다. ⓒ .

1896년 1월, 구연영이 참여한 ‘이천수창의소’ 의병이 광현 전투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맞아 승리를 거둬들였습니다. ‘적의 군사가 180명이었는데, 오늘 아침 죽은 적을 제하면 살아 돌아간 자가 두어명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구연영 독립운동가) ⓒ .

구연영은 1907년 이천 구국회 계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 .

구연영은 1907년 8월 일본군 수비대에 아들 구정서와 순국했습니다. 일진회의 밀고로 출동한 일본군에 의해 맏아들 구정서와 함께 체포됐습니다.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1907년 8월 24일 부자가 함께 총탄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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