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가 안승우(1865~1896)는 18895년 이춘영과 함께 김백선을 영입하여 창의의 깃발을 드니, ‘곧 지평의병이다’라고 했습니다. ‘지팡이 끝에 기를 달고 적을 꾸짖다가 죽는 것이 오히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며, 그것은 또한 큰 의리를 뒷세상에 펼 수도 있는 것이다.’(이정규, 「창의록」) ⓒ .

안승우는 1896년 유인석의 제천의병에 참여, 전군장(前軍將)이 됐다. ‘참으로 존망의 시기이니 각자가 거적자리에서 자고 창을 베개 삼으며 또한 모두 끓는 물에라도 들어가고 불에라도 뛰어들어서 이 나라의 재조(再造)를 기약하고…’(유인석 의병장, 「격고팔도열읍」) ⓒ .

안승우는 1896년 제천의 남산전투에서 관군과 접전 중 적탄에 맞고 체포됐다. ‘나는 장령(將領)으로 죽음을 면할 수 없으니, 네가 나와 같이 죽는 것은 무익하다. 속히 떠나서 훗날을 기약하라.’(이정규, 「육의사 열전」) ⓒ .

의병진이 와해되어 흩어졌으나 제자 홍사구만 자리에 남아 안승우를 호위하다 함께 순국했다. ‘종사(從事)가 되어 주장(主將)이 화를 입는 것을 보고 어찌 혼자만 살 수 있으며, 제자가 되어서 스승이 화를 입는 것을 보고 어찌 혼자만 살 수 있습니까. 이때 홍사구의 나이 18세였다.’(이정규, 「육의사 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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