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 ⓒ 경기도청
경기도 곳곳의 사찰에는 조선 시대 화승들이 남긴 국보와 보물급 불화들이 지금도 조용히 숨 쉬고 있습니다.
높이 6m가 넘는 초대형 괘불탱(掛佛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감로왕도, 화려한 색채 속에 깨달음의 세계를 담아낸 영산회상도 등의 작품은 단순한 종교 그림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믿음과 삶, 그리고 시대의 예술 감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화유산입니다.
붉은색과 녹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채색, 수십 명의 인물을 빈틈없이 배치한 치밀한 구도, 그리고 극락과 구원의 세계를 표현한 상징들. 경기도의 국보·보물 불화들은 오늘날에도 관람객들에게 압도적인 감동을 전하며, 조선 시대 사람들이 바랐던 깨달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안성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 국가유산청
안성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국보 제296호)
국보 제296호인 오불회 괘불탱은 국내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길이 659.5cm, 폭 398.3cm의 크기로, 구름을 이용하여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오불회(五佛會)’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다섯 부처의 모임’이라는 뜻인데요. 오불회 괘불탱은 상단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모셔 삼신불(三身佛, 부처의 세 가지 모습)을 묘사하고, 그 아랫단에는 약사불과 아미타불, 그리고 상단의 석가모니불을 아울러 삼세불(三世佛, 과거·현재·미래의 세 부처)을 표현했습니다. 가장 하단에는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을 그려 수미산 정상의 도솔천궁(兜率天宮, 이상적 하늘 세계 중 하나인 ‘도솔천’의 궁전)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3단 배치는 예배자들에게 삼신불과 삼세불의 세계를 통해 진리를 깨우치게 하고,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구원으로 이상세계인 도솔천궁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괘불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채색은 녹색을 주로 하고 황색과 황토색을 대비시켜 다소 어두워 보이나, 옷 처리를 붉은색으로 하여 경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괘불은 조선 인조 6년(1628)에 법형 비구(法炯 比丘)가 그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괘불에서 보이는 단아하고 세련된 인물의 형태와 짜임새 있는 구도, 섬세한 필치 등은 당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17세기 전반의 불화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안성 칠장사 삼불회 괘불탱. ⓒ 국가유산청
안성 칠장사 삼불회 괘불탱 (보물 제1256호)
칠장사 삼불회 괘불탱은 가로 4.54m, 세로 6.28m의 화폭에 영축산에서 석가가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영산회상도로, 삼신불과 삼세불 신앙이 내포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조선 전기에 대두된 이래, 조선 후기 괘불탱에 성행했습니다.
화면은 석가불을 중심으로 한 하단과 노사나불과 아미타불이 있는 상단으로 구성되는데 사각형의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한 석가불의 주위를 팔대 보살과 십대제자, 사천왕 등이 에워싸고 있는 형상입니다. 대좌 아래에는 사리불이 석가의 설법을 듣고 있습니다.
좁은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친 석가불은 신체에 비해 큰 직사각형의 얼굴에 올라간 눈과 쳐진 눈썹, 작은 입의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꽃무늬로 장식된 신광(身光)이 표현되었습니다. 석가불과 마주하여 법을 청하는 사리불의 출현은 인접한 청룡사(靑龍寺) 영산회괘불탱(1658년 작)을 따랐습니다.
연꽃을 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보관에 화불이 있고 오른손에 연꽃, 왼손에 정병을 든 관음보살을 제외한 대부분의 권속들은 합장한 자세입니다. 둥근 목깃의 복장을 한 범천과 제석천은 천의(天衣: 천인이나 선녀의 옷)를 입은 다른 보살들과 구별됩니다.
상단에는 보탑(寶塔)과 보수(寶樹) 좌우로 두 손을 어깨높이까지 들고 있는 노사나불과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수인을 짓고 있는 아미타불좌상이 각기 4구의 보살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최상단에는 9구의 보살을 반원형의 광배로 구획한 후, 좌우에 타방불(他方佛), 팔부중(八部衆), 용왕과 용녀 등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조색인 밝은 붉은색과 녹색 외에도 가벼운 느낌의 하늘색, 분홍색 등이 사용되었으며 옷 문양에는 금니(金泥)도 보입니다.

안성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 ⓒ 국가유산청
안성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제1257호)
안성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은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 괘불입니다.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6대 보살, 십대제자 등이 에워싼 모습인데, 중앙의 석가불은 머리에서 빛이 나고 특이하게도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에 올린 시무외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한 모습입니다.
관을 쓴 제석천, 면류관에 홀을 든 범천상, 책과 연꽃·정병 등을 들고 있는 6명의 보살 등이 석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석가 위로는 여러 제자들과 부처의 수호신인 4명의 금강역사상이 있고,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여러 불상들이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주로 진한 붉은색과 청색이 많이 사용되었고 복잡한 구도로 인해 무거운 느낌이 들지만, 윗부분에서 보여주는 화려함과 아랫부분의 무늬로 인해 여유 있어 보입니다.
효종 9년(1658)에 승려화가인 명옥 등이 그린 것으로, 본존의 크기가 매우 컸던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그림과는 달리 본존인 석가불이 작아져 상대적으로 주변 인물의 크기와 비슷해진 그림으로, 17세기 중엽 영산회상도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 ⓒ 국가유산청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 (보물 제1792호)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는 조선 영조 11년(1759) 상궁 이성애가 숙종의 후궁인 영빈 김씨(寧嬪 金氏, 1669~1735)의 명복을 빌며 제작한 불화입니다.
이 불화는 가로 95cm, 세로 144cm의 종이를 각각 가로 폭 5매, 세로 폭 6매씩 총 30매를 이어 붙여 제작했습니다.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는 크게 상하 2단 구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림 위쪽 가운데에는 법신(法身) 비로자나불이, 오른쪽에는 보신(報身) 노사나불이, 왼쪽에는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림 아래에는 6보살과 제석, 범천, 십대제자, 천인, 설법을 경청하는 대중들을 ‘브이(V)’자 모양으로 배치했으며, 그림 아래 가운데에는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천인과 설법을 경청하는 인물을 구름으로 구획해 배치했습니다.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는 밝고 화사한 색과 굵고 힘찬 묵선이 조화를 이루어 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움직임과 자연스러운 옷자락 주름을 수준 높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삼신불과 권속들이 함께 그려져 있지만, 언뜻 보면 삼신불 중심의 구도로 보일 만큼 삼신불이 화면 윗부분에 큼직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도는 18세기 중후반 경에 제작된 서울과 경기 지역의 삼신불 괘불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 ⓒ 국가유산청
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보물, 2026년 2월 지정)
가평 현등사 아미타설법도는 화기(畵記)에 있는 기록을 통해 1759년(영조 35)이라는 제작 연대, 오관 등의 제작자, 현등사라는 원봉안처 등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입니다.
이 작품은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아미타여래가 극락에서 여러 권속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표현했습니다.
작품은 화면 중앙에 크게 배치한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보살, 나한, 팔금강, 팔부중 등 권속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했습니다. 존상의 위계에 따라 채색과 크기를 달리 표현하고 주존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게 배치하여 40여 존상이 함께 그려져 있음에도 안정감을 줍니다.
아울러 문양 등 세부 표현의 섬세한 처리, 깔끔하고 힘이 있는 필선 등 수화승 오관의 뛰어난 역량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18세기의 경기 지역 불화가 많지 않은데, 이 작품은 당시 경기 지역의 불화와 화승들의 화풍을 보여줄 뿐 아니라 18세기 불화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무엇보다 서울・경기 지역의 아미타설법도 중에서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르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입니다.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 ⓒ 국가유산청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 (보물, 2024년 12월 지정)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는 화기에 있는 기록을 통해 1790년(조선 정조 14)이라는 제작 연대와 상겸(尙兼), 홍민(弘旻), 성윤(性玧), 유홍(宥弘), 법성(法性) 등 제작 화승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입니다.
정조는 1789년 아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 1735∼1762)의 무덤을 화성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으로 조성하고 원찰(願刹)로 용주사를 창건한 뒤 이곳에서 영가천도(靈駕薦度, 불교에서 죽은 이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도록 기원하는 의식)를 위해 수륙재를 개최하였는데, 이 수륙재에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조성 후 대웅보전에 모셔졌던 이 작품은 상단에는 불・보살 강림을, 하단에는 시식 의식 및 무주고혼(無主孤魂)을 배치하여 천도 의식을 통해 불・보살의 구제를 받아 망자가 천도하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표현했고, 화면 상단 좌우에 벽련대(碧蓮臺)와 하단에 지옥문을 깨고 망자를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그려 천도와 구제를 극대화했습니다.
또한 화면 상단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옆에 목련존자(木連尊者)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효(孝)사상을 강조하는 한편 감로도가 수륙재만이 아니라 우란분재(盂蘭盆齋, 돌아가신 조상과 부모의 영혼을 위해 공양을 올리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의식)와도 관련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화면 하단에 그려진 죽음의 장면 중에는 18세기 풍속화를 연상시키는 여러 장면과 당시 소설 삽화에 영향을 받은 표현이 있어 조선 후기 불화에 미친 일반 회화의 영향 관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는 화면의 안정된 구도나 세부 표현 기법에서 완성도가 높으며, 18세기 후반 불화에 수용된 일반 회화의 양상만이 아니라 불교의 구제신앙과 유교의 효 사상이 결합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정조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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