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복합문화센터에서 만난 가야금 연주자 박영아 씨는 나중에 인간문화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경기뉴스광장 허선량
■방과 후 수업에서 만난 가야금 내 인생 전반을 뒤흔들다
“언니가 가야금을 배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무대에서 공연하고 박수를 받는 제 모습을 상상했어요. 정말 아름답고 황홀한 광경이 그려졌어요. 방과 후 수업에서 처음 만난 가야금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동탄복합문화센터에서 만난 박영아(30) 씨는 국악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넘쳐보였다.
"그당시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방과 후 예체능 수업이 활성화됐던 시기였어요. 다양한 예능교육 중 언니랑 가야금을 배우게 됐는데 재밌고 흥미로웠어요."
7살 귀여운 아이는 에너지와 집중력이 남달랐다. 자기 몸보다 큰 가야금을 배우려면 누군가의 꾸준한 도움이 필요했는데 끝까지 가야금 연주자의 길을 걷게 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그의 엄마였다.
“늘 엄마가 저와 언니의 가야금 전공을 위해 매니저처럼 일주일에 2~3회 서울로 레슨 다닐 때 운전해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국악전문 중고교 입학과 졸업 때마다 열성적으로 도와주셨어요. 한마디로 자식교육에 모든 걸 다 바치신거죠.”
엄마의 헌신과 노고에 하늘도 감탄한 걸까...두 딸들은 현재 동탄 MIH(Made in Hwaseong)복합문화센터의 가야금 연주자와 아울러 국악전수의 길을 걷고 있다.
■ 경기도는 초등학교 때 무대에서 가야금 연주 경험을 선사해준 곳
“가야금을 6년 열심히 하고 보니 자연스럽게 전공을 생각하고 국악중학교 진학을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사는 수원에는 국악전문 중·고교가 없었어요. 할 수 없이 서울로 통학을 했어요. 체력 소모가 많았죠.”
서울로 가야금을 가지고 통학할 때도 늘 엄마와 함께했다. 막상 중학교 입학하고 보니 전공자들만 잔뜩 모인 곳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방황이 약간 있었으나 엄마의 도움으로 지속할 수 있었다.
“중간에 고비가 있었지만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화목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 악기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어요.”
경기도는 그에게 어떤 존재였나라는 물음에 “그렇게 힘들게 통학을 10년 정도 했어도 서울로 이사를 가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부모님과 늘 함께 생활하는 화목한 우리 집이 좋았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정조대왕 능행차’에 가야금 연주자로 무대에 섰던 경험도 나중에 제겐 큰 자산이 됐어요.”
■지금 국악은 화려한 변신 중
우리에겐 아직 국악은 예전보다 많이 친숙해졌지만 아직도 ‘국악독주회’나 ‘산조’ 등은 긴 시간 관람하기에 일반인들에겐 어렵고 낯설다. 그래서 국악을 즐기는 관전포인트를 물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고유의 흥이 있어요. 흥을 가지고 태어난 민족이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갖기 전에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고 신명나게 즐기면 훨씬 가깝게 느껴질 수 있어요. 게다가 요즘에는 연주할 때 유행 중인 트롯이나 팝 혹은 클래식 등 장르를 섞어서 연주하면 일반인들의 반응도 뜨겁죠. 아는 음악이 나오니까 더 좋아해요. 친숙해서 그런가봐요.”
또한 퓨전국악도 연주자로서의 기본을 잘 지켜서 품격있는 공연으로 국악 보급에 앞선다면 그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저희도 공연팀이 있어서 대금, 해금 연주자들과 함께 행사공연도 가곤 해요. 팀웍 맞는 연주자들과 함께 하는 공연은 제 일상에서 큰 즐거움이기도 해요.”
■무대공연이 목마른 예술가들..그리고 국악전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제가 몸 담고 있는 화성시예술단(Made In Hwaseong)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예술인들이 모여서 다양한 장르의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어서 저희 같은 연주자들에겐 늘 도전의 장이 됩니다. 서로에게 시너지효과를 주죠. 다양한 예술활동을 돕는 MIH같은 단체가 많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또한 그는 가야금 전공자로서의 아쉬움을 묻는 질문에 “수원에서 국악을 전공하는 일은 정말어려워요. 시흥에 국립전통예술학교가 있지만 멀고 불편하기도 하고요. 경기도에 예술학교가 좀 더 많이 생겨서 전공자들이 서울로 통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경험해보니 정말 힘들거든요.”
그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악단들의 정단원 채용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늘어나길 희망한다고 했다.
그마저도 채용공고가 적으니 미리미리 오디션 준비하고 늘 기회를 잡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한다고 말했다.
“저를 비롯한 대다수의 연주자들은 악단에 소속 후 대학강단에서 후배양성을 꿈꾸죠. 제자를 키우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보람되고 자긍심이 느껴져요.”
또한 그는 앞으로 국악전공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모든 예술분야 종사자들은 그 나라 문화의 격을 높이는 일등공신이에요. 코로나 위기상황에서도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힘들어도 참고 미래를 생각하고 인내하는 중입니다. 후배들을 위해 한마디 전한다면 전공 공부하는 단계마다 크던 작던 고비들을 많아요. 그걸 이겨내길 바라고요. 지금은 공연하는 분들도 코로나로 인해 무대공연도 줄고 힘든 시기지만 고비를 하나하나 넘다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30년의 인생 앞에 펼쳐질 우리나라 국악의 미래가 그의 손끝에서 더욱 멋지게 펼쳐질 그날을 기대해본다.
늘 준비하는 사람이 기회를 잡는다고 생각하고 매일매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박영아 연주자. ⓒ 경기뉴스광장 허선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