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져온 감악산 전경. ⓒ 사진 제공∙양주시
‘계절의 여왕’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 ‘가정의 달’이라고도 한다. 5월이 갖는 가정의 기운은 선남선녀들의 마음까지 흔들어 여기저기서 결혼식이 열리게 한다. 사랑이 넘치는 이 달에 ‘외로운 솔로’들이 눈에 들어오는 건 나의 경력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젊은 시절 잠시 커플매니저로 일해서인지 외로운 솔로들을 보면 만남을 주선하려는 오지랖이 발동한다. 5월의 화창한 햇살에도 외로움에 떠는 청춘, 그것은 겪어야만 실감하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외로움을 없애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것이 과학의 측정 대상이 되지 못한다면, 그 비결 또한 비과학 혹은 초과학의 영역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 자연의 신비를 탐험하고 즐겨 찾는 나로서는 그 답 역시 자연에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월악산, 삼성산(전북 정읍), 두타산, 오봉산, 금산, 산방산, 가야산 등 우리 땅에는 사랑의 기운을 북돋우는 명당이 널려 있다. 그뿐인가. 감악산, 북한산, 태백산, 삼성산(경기안양), 용문산, 두륜산, 일월산 등 외로움을 약화시키는 명당들도 존재한다.
사랑의 기운을 복 돋우는 명당과 외로움을 약화시키는 명당,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느냐는 당사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런데 외로움이 뼛속까지 파고들고 있다면 외로움을 약화시키는 명당으로 가야할 것이다. 외로움을 덜어내는 행복여행, 이번 목적지는 감악산이다.
5월에 찾기 좋은 감악산

감악산의 봄 풍경. ⓒ 사진 제공∙양주시
감악산은 경기 양주시, 파주시, 연천군에 걸쳐 있는 높이675m의산이다. 감악산이라는 이름은 예부터 바위사이로 검은 빛을 띤 푸른빛이 쏟아져 나온다고 해 감악(紺岳), 즉감색 바위산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했다. 이곳 토박이 주민들은 ‘감박산’이라고도 하는데 <고려사>와<동국여지승람>에는 감악으로 표기돼있다. <삼국사기>에서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감악산은 이후 발간된 문헌에서 ‘감악산은 웅대하고 높으며 송곳처럼 뾰족한 정상에 오르면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 정상에는 사당이 있고, 정기적으로 감악산 산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이 신령을 당나라 장수설 인귀로 이해하기도 한다’라고 기록돼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 오악의 하나로 신령스러운 산으로 일컬어졌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궁중에서 이 산에 춘추로 별기은(別祈恩: 국가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명산대천에서 지내던 산신제의 하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됐다)을 지냈다고 한다.
경기도의 모든 산이 서울과 가까워 주말이면 인파로 넘치는데, 감악산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특별함 때문인지 그 성격이 조금 남다르다. 산악인들에게 인기 있는 시산제(始山祭: 산악인들이 매년 초에 지내는 산신제)는 연초에 끝나게 마련인데 감악산에서는 더위가 몰려오기 전까지 성행한다. 돼지머리, 떡, 과일, 막걸리를 준비해 산행의 안전, 가족의 평안을 다짐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감악산 등산로는 양주 쪽으로는 남면 신암저수지를 시점으로 정상에 오르는 2km 구간과, 원당저수지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2.5km 구간이 있다. 파주 쪽으로는 범륜사 입구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르는 3.9km 구간, 휴게소(주차장)를 출발해 정상에 오르는 4.2km 구간이 있다. 연천군 쪽으로는 그동안 등산로가 없었는데 지난해두 곳의 등산로를 개설했다. 신설된 등산로는 전곡읍 적동분교에서 시작해 정상에 이르는 3.84km 구간, 늘목리 ‘하늘아래 첫 동네’에서 출발해 정상에 이르는 2.46km구간이다.
감악산에서 인파가 몰리는 등산로는 파주의 범륜사 쪽인데 이는 운계폭포를 구경하기 위함이다. 산 중턱에서높이 20m로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이 폭포는 남근탕과 선녀탕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운계폭포를 구경하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장마철에야 운계폭포의 멋진 장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폭포 주변 지반이 약해지고 낙석 위험 때문에 진입로가 폐쇄되는 경우도 많다. 멋진 광경보다는 등산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당국의 조치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운계폭포를 항상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됐으면 한다.
산악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등산로는 양주시 신암저수지 쪽인데 감악산 등산로 중 가장 험난한 코스다. 깎아지른 절벽을따라오르는등산길은얼굴바위지점까지오면절정에 이른 듯하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바위를 오르느라 다리가 후들거려 손을 써야할 정도로 험난하지만 주변의 풍광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시원하다. 감악산은 한 겨울에도 바위와 절벽에서 뿜어내는 기운이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기에 방문객들의 입에선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양주, 파주, 연천의 어느 쪽 등산로를 택하더라도 감악산 등산의 목표는 감악산 정상과 임꺽정봉이다. 감악산 정상에는 과거의 영험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파주시 적성면에 자리 잡은 ‘감악산 신라고비’다. 신라고비에 대해 학계에서는 비의 양식, 건립 추정 연대, 지형적 조건 등으로 보아 또 하나의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국보 제3호)로 추정한다. 현재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는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있지만 원래는 북한산비봉정상에 세워져 있었다.
신라고비는 비문이 없어 ‘몰자비(沒字碑)’로 불리기도 하는데, 조선시대에 발간된 <적성군읍지>에는 비의 소재를 밝히면서 명문(銘文)의 판독이 불가능함을 기록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은 신라고비에 대해 ‘상유고비(上有古碑)’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조선시대 기록은 신라고비 옆에 설인귀의 사당이 있다고 전하며 설인귀의 비로 추정했다. 또 ‘빗돌(비뜰)대왕비’라는 명칭도 전해지는데, 이는 ‘비석대왕비’라는 뜻으로 비석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된 때문으로 보인다.
영험함으로 대접받는 신라고비

감악산 정상의 신라고비. ⓒ 사진 제공∙양주시
하지만 비석이 지칭하는 대왕을 설인귀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당나라 장군인 설인귀(613~683년)는 강주용문(지금의 山西省河津)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라와 연합해 668년 부여성을 점령했고, 고구려 평양성 점령에도 공을 세웠다. 이에 당나라는 고구려에 군정을 실시했고 설인귀를 군정 총독에 임명했다. 그러나 고구려 땅을 되찾으려는 신라와 고구려 부흥군의 연합작전에서 설인귀는 연이어 패배했고, 677년 신성(지금의 瀋陽省)으로 퇴각했다.
이처럼 한반도 역사에서 차지하는 설인귀의 특별한 행적때문인지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는 설인귀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도 전해온다. 이 설화가 발전해 설인귀를 산신으로 숭앙하는 풍습이 생겼고 감악산에는 설인귀에 대한 전설이 도처에 남아있다.
신라고비의 주인공이 신라 진평왕이라는 설도 있다. 진평왕은 북한산성을 공격한 고구려 군을 격퇴하기 위해 친히 군대를 이끌고 출병해 승전했다. 그런 연유로 승전을 기념해 비를 세웠고 그것이 신라고비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렇게 갖가지 추측을 달고 다니는 신라고비는 그에 걸맞은 남다른 주변도 가지고 있다. 감악사지와 보루성이 그것이다. 감악사지와 보루성은 고고학자가 아닌 한 일반인들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 한다. 감악사지는 신라고비와 헬기장이 있는 감악산 정상부에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감악사에 대해 ‘감악사는 민간에 전하기를 신라가 당나라의 설인귀를 산신으로 삼고 있다(紺岳祠諺傳 新羅以唐薛仁貴爲山神)’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보루성의 경우 임꺽정봉에 보루성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있는데 정상부의 외곽을 돌아가며 부분적으로 석축한 흔적이 남아있다. 그 흔적들은 고려시대 이후의 것이 주류를 이룬다. 용도는 감악산 산신제와 관련된 제사유적일수도 있고, 넓은 범위의 석축 흔적으로 보아 보루성(사방을 조망하기에 좋은 낮은 봉우리에 쌓은 소형 석축산성으로, 산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군사시설)일 가능성이 더 크다.
신라고비는 지금도 영험함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감악산 정상은 주변을 막는 높은 산봉우리들이 없어 맑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고 일출을 감상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감악산 정상을 밟는 사람들 대부분은 송악산은 안중에도 없고 신라고비를 찾는 데 열중한다. 비교적 넓은 감악산 정상에서 초라한 모습의 신라고비는 일부러 찾는 이들이 아니라면 지나치기 쉽다. 그마저도 소원을 던져놓으려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신라고비에 눈도장을 찍으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팬들은 신라고비가 가진 1000년의 정력 기운을 외치며 포옹하고, 일부는 신라고비에 식복(食福)이 넘친다며 비석에 기대어 밥을 먹는다. 신라고비가 후손에게 전해지려면 비에 기대어 식사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하고, 신라고비를 보호하려는 전문가의 의견도 제시돼야한다.
신라고비 다음으로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은 임꺽정봉이다. 양주의 백정출신으로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관아를 습격했던 임꺽정의 전력 때문인지 양주에는 그에 얽힌 전설이 많다. 임꺽정이 관군을 피해 도망 다니다 숨었다는 감악산에는 높이 676m의 임꺽정봉이 있다. 너른 평지의 감악산 정상에 비해 좁은 임꺽정봉 정상은 발 도장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임꺽정봉은 사방이 절벽인 암봉(岩峰)으로 마음이 여린 이들은 다리가 떨린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대부분이 임꺽정봉에 오르면 떠나기를 주저하는데,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의 경치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마도 조선시대 임꺽정은 이 봉우리에서 개성과 한양을 호령할 기개를 키웠을지도 모른다.
임꺽정봉과 임꺽정굴

임꺽정봉. ⓒ 이현수
임꺽정봉 인근에는 임꺽정굴이 있는데, 이 굴의 최초 주인은 설인귀로 고구려를 치러 온 시기에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임꺽정은 관군의 추격을 피해 감악산에 숨었고, 당시 이 굴에서 머물렀기에 임꺽정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임꺽정굴 역시 임꺽정봉처럼 남다름을 갖추고 있다. 굴의 초입이 구멍으로 뚫려있고, 바로 아래로 아찔할 정도의 깊은 절벽이 펼쳐진다. 구멍의 절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깊이와 넓이를 추측할 수 없는 굴이 나온다지만 절벽구멍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감악산에서 또 다른 유명한 굴은 남선굴이다. 양주시 남면에 자리한 이곳은 도를 얻으려는 이들의 방문이 빈번하다. 남선굴은 고려 말의 충신 남을진이 은거하던 동굴이라고 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한 남을진에게 출사를 권유하고 사천백에 봉했다. 이에 남을진은 “내가 산 속 깊이 들어가지 못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노라”고 통곡하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감악산 석굴 속에 들어가 햇빛을 보지 않고 석굴 밖의 땅을 밟지 않으면서 일생을 마쳤다.
남을진이 숨을 거둔 뒤 사흘 동안 흰 구름이 그의 시신 위를 맴돌자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겨 시신을 거둬 굴 밖으로 꺼냈다. 그러자 큰 바람이 일어나면서 굴속에 있던 남을진의 책들을 조각조각 날려 보내니 후세사람들이 이곳을 남선굴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적성현지, 양주목읍지, 양주군읍지, 봉암리 남을진 신도비 등 조선시대의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현재 쌍굴 형태를 하고 있는 남선굴은 남을진을 기리는 의령 남씨 후손이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확장, 조성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278호인 남면느티나무. ⓒ 사진 제공∙양주시
감악산을 등산한 뒤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양주시 남면 황방리의 천연기념물 제278호 남면느티나무다. 수령이 약 850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밀양 박씨의 선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며 나무 밑 부분 가운데는 썩어 3m가량 속이 비어있다.
감악산 기운을 직방으로 받는 위치 때문인지 남면느티나무는 초보자가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뿜고 주변엔 방문객들이 꽂아놓은, 불타다 남은 향들이 널려 있다. 노구의 남면느티나무가 견뎠을 불타는 향을 보면 참으로 아찔하다.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왕할머니처럼 인자하고 곧은 풍모의 남면느티나무이기에 예를 갖추려는 마음은 당연지사겠지만, 인근 개울가에서 분향하길 부탁하고 싶다. 분향은 부정(不淨)을 제거하고 정신을 맑게 해신명(神明)과 통하려는 절차이기에 굳이 천연기념물인 남면느티나무 곁에 위험한 향을 꽂지 않아도 된다.
1000년이 넘는 산신제의 장소,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설인귀, 도둑이면서 조정을 조롱하고 백성들의 믿음을 얻은 임꺽정….
이처럼 감악산에는 예사롭지 않은 전설이 심어져 신비스러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남다른 기운을 만들어낸다. 감악산의 남다른 기운은 드세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서슬 퍼런 삼인검(三寅劍: 인년(寅年), 인월, 인일에 만드는 칼로 칼등부위에 북두칠성을 새겼다) 기운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적들은 물론 정적과 악귀를 물리친다는 속설을 가진 삼인검처럼 감악산 곳곳은 내 몸속에 박힌 나쁜 기운을 떨어낼 정도로 그 역사와 전설의 힘이 강력하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내 몸의 나쁜 기운을 떨어낼까? 콕 찍어 말하면 외로움을 떼어내려면 감악산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감악산으로 떠나기 하루 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배우자를 만나는데 부족했던 점을 생각해본다. 감악산 등산을 시작하고 임꺽정봉에 올라 그 동안 외로웠던 자신의 인생을 손에 담아 허공에 마구 던져버린다. 한번으로 어렵다면 마음이 후련해질 때까지 반복한다.
두 번째, 임꺽정굴로 가서 절벽 구멍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단점(소심함, 나약함, 바람둥이 기질, 불성실한 사귐 등)을 털어버려라.
세 번째로 감악산 정상(이왕이면 신라고비를 바라보며)에 올라 정력기운(남녀모두)을 외치며 온몸에 축적하자. 넷째, 남선굴에 가서는 자신에게 배우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10개 이상 열거한다. 마지막으로 남면느티나무 앞에서 펼쳐질 자신의 운명에 파이팅을 외치며 다짐한다.
1000년이 넘는 자연신앙의 근원지인 감악산 주변에는 산의 기운을 받으려는 기도원들도 성업 중이다. 평소 영적 교감이 강해 산란한 꿈에 시달려서 신경이 예민해진 사람들은 감악산 행복여행을 자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