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경제의 시간. ⓒ 경기도청
지난해 소설가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따라 문학 분야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문학관’은 문학과 관련된 전시물을 전문으로 하는 박물관입니다. 경기도에서 즐길 수 있는 문학기행을 추천합니다. 경기도의 다양한 문학관으로 함께 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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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홍사용문학관은 근대 낭만주의 문학과 신극운동을 이끈 노작 홍사용 시인의 문학 정신과 문학사접 업적을 기념하고 계승하고자 2010년 3월 설립되었습니다. ⓒ 경기뉴스광장
화성시 석우동에는 일제 강점기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시로 민족의 울분을 대변했던 노작 홍사용(1900-1947) 선생의 문학관이 있습니다.
반석산에 안겨 있는 노작홍사용문학관은 근대 낭만주의 문학과 신극운동을 이끈 노작 홍사용 시인의 문학 정신과 문학사접 업적을 기념하고 계승하고자 2010년 3월 설립되었습니다.
노작홍사용문학관은 개관 이래 시민 모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이자 문화충전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또한 관내 문학 전문도서관으로써, 지역민들과 문학 애호가, 작가 지망생들이 문학적 감수성과 교양을 쌓고 창작 역량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2011년 추진한 산유화극장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소규모 연극 공연과 각종 강좌가 가능한 다기능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노작홍사용문학관은 산유화극장, 강의실 등 시설 대관을 통해 지역사회에 문화예술 활동을 적극 장려하였고 문예프로그램과 시민 동아리, 노노카페 등을 운영하며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에 부응하고 있습니다.

노작 홍사용은 한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고 연극인이었습니다. ⓒ 경기뉴스광장

홍사용은 시문학사적 위치로 볼 때 1920년대 초 낭만주의운동의 선두에 섰습니다. ⓒ 경기뉴스광장
일제 강점기 다방면의 문학가로 활동한 노작 홍사용
노작 홍사용은 경기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경기 용인 및 화성 일대에 많은 농토를 가진 지주였기에 노작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무관학교 1기생에 합격한 부친을 따라 서울로 상경하였습니다. 그가 9세 때 부친의 군대가 해산하고 백부 승유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본적지인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돌모루)로 이사하였습니다.
휘문의숙 재학시절 동기인 정백, 1년 후배인 박종화 등을 만나 문학수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그는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고, 3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나 그해 6월에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고향에서 정백과 함께 현량개에 은신하면서 수필과 시를 쓰며 월탄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홍사용은 재종형 홍사중을 설득해 ‘문화사’를 설립하고 문예지 《백조》와 사상지 《흑조》를 기획, 《백조》만 간행했으나 3호로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신극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1923년 근대극 운동의 선구적 극단인 토월회에 가담해 문예부장직을 맡았고 직접 서양극 번역과 번안 그리고 연출도 했습니다. 1927년에는 박진, 이소연과 ‘산유화회’를 결성하고 1930년에는 홍해성, 최승일과 신흥극단을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30세 무렵부터 5년간 홍사용은 전국 곳곳을 방랑했습니다. 1932년 〔불교誌〕에 희곡《벙어리굿》을 발표, 1935년을 전후하여 세검정 근처에 자리 잡고 한의공부를 하여 한동안 한의사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1939년 희곡 《김옥균전》을 쓰다가 일제의 검열로 붓을 꺾어버렸습니다. 그는 이 일로 주거 제한조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강경·전주 등지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모두 오래 가지 못했으며, 1944년에는 이화전문에 잠시 출강했습니다. 해방 후 근국청년단에 가입, 청년운동을 전개하려 하였으나 지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947년 1월 5일 폐환으로 별세했습니다.

노작 홍사용 묘역은 부인 원주 원씨와 합장묘로, 2002년 12월 화성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 경기뉴스광장

노작 홍사용 묘역 아래쪽으로는 홍사용 선생의 고향, 먹실골 마을 주민들이 사용하던 옹달우물터도 있습니다. ⓒ 경기뉴스광장
노작 홍사용 묘역과 우물터 등 함께 둘러볼 수 있어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있는 반석산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동산으로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반석산에는 노작 홍사용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노작공원이 있습니다. 노작공원의 이름은 홍사용의 호인 노작에서 따왔습니다. 노작의 의미는 ‘이슬에 젖은 참새’라고 합니다. 공원에는 봉분만 있을 뿐 아무런 석물도 없었으나 1984년 5월 그의 대표작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시비 건립을 계기로 묘표, 향로석, 혼유석, 상석 등을 갖추었습니다.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나와 반석산으로 향하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노작 홍사용 묘역도 있습니다. 노작 홍사용 묘역은 부인 원주 원씨와 합장묘로, 2002년 12월 화성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는데요. 이곳에 참배를 다녀간 문인들이 노작 선생의 기운을 받아 큰 상을 받거나 문운이 트인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노작 홍사용 묘역 아래쪽으로는 홍사용 선생의 고향, 먹실골 마을 주민들이 사용하던 옹달우물터도 있습니다.
홍사용의 문학 세계를 떠올리며 걷다 보면,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몸과 마음도 자연스레 풀릴 듯합니다. 문학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따뜻한 봄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 이용 안내
- 화~일요일 09:00~18:00(국경일 개관)
- 매주 월요일, 명절, 선거일 휴관
● 오시는 길/문의처
주소: 경기도 화성시 노작로 206
전화: 031-8015-0880
누리집:
https://www.noja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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